우루과이와의 16강전 월드컵이 패배로 끝난 날,
딱 대한민국 16강전 까지의 대회 숫자 만큼 만난 그녀와 나는 그날
8강 진출의 꿈을 안고 대한민국을 응원하러
어색하지만, 기대되는 마음으로 만났다.
저녁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그날,
결국 대한민국은 아쉽게도 우루과이에게 8강 진출의 티켓을 내주었고,
그날 대한민국의 2010 남아공 월드컵이 끝난 것처럼 나의 짧은 소개팅 역사도 끝났다.
잡히지 않는 택시를 뒤로하고 가까운 곳에서 술을 마시자던 그녀는 결국
술김에인지, 아니면 정말 그 동안 말하지 못했던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눈물을 글썽이며,
정말 미안해요, 라는 말을 술주정 처럼 반복했다.
솔직히,
그런 미안하다는 말을 해 준 것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 고마웠다.
누구나에게 흔히 있는 일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대해졌던 나에게는,
그것도 너무나 고마웠던, 예컨데 잊을 수 없는 슬프지만 고마웠던 진심이었다.
늦은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에야 자리를 떠
그녀의 집앞까지 바래다 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왠 통통한 고양이 한마리가 평소와 다르게 나를 보며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고양이 왕국이 여기 아니면 어디냐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고양이가 판치는 동네였고 그만큼 고양이가 사람 보기를 서울역 앞 비둘기 보는 만큼
시큰둥한 그런 동네에서
그 고양이는 좁은 골목길에서 나를 가로막고 이빨을 세우며 으르렁 거렸다.
축구도 지고, 맘에 쏙 들었던 여자한테도 까이고,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하찮은 고양이는 나를 보며 으르렁 거리고,
갑자기 술김에 성질이 난 나는 들고 있던 우산을 골프채 휘두르듯 크게 휘둘러 그 고양이를 위협했다.
그런데,
나의 위협적인 모습을 피해 달아난 그 통통한 어미 고양이 뒤에는
이제 막 태어난 거의 새끼쥐 만한 크기의 막 태어난 새끼 고양이가 빗속 진흙탕 속에 있었다.
눈도 뜨지 못한채 간신히 앞발을 움직이며 몸을 빙글빙글 돌리는 비에 젖은 새끼 고양이가.
무의식 중에 나는 어미 고양이가 도망간 그자리의 새끼 고양이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깨끗한 수건 하나를 꺼내, 내 침대 옆 바닥에 깔아 놓고
조심히 새끼 고양이를 눕히고는 수건을 반으로 접어 이불을 만들어 주었다.
자그마한 그릇을 하나 꺼내 냉장고 속 우유를 부어 주었고,
더운 초여름 밤에 보일러를 켰다.
그리고 술이 오른 나는 침대에서 푹 쓰러져 버렸다.
늦은 휴일 오후에 일어나서야
새끼 고양이를 다시 살펴 볼 수 있었고,
그렇게 따라 주었던 우유가 전혀 비워지지 않은 걸 알 수 있었다.
갓 태어 났지만 유난히 꼬리가 길어 영락없이 새끼 쥐와 다를 바 없는
눈 꼭 감은 새끼 고양이를 두 손으로 조심히 들어 쓰다 듬고 나서는
손에 묻은 흙탕물을 보고
따뜻한 물을 틀어 씻겨 주면서, 나는 생각했다.
내 욕심으로,
- 마음에 두었던 여자한테 채이고, 그런 나를 보며 으르렁 거리던 뚱뚱한 고양이가 얄밉고,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의 어미 고양이 품속 보다 내 방 안이 훨씬 좋은 환경일거라고 믿던 욕심으로
새끼 고양이를 빼앗아 온 것이구나. 라고.
그리고는 곧장 나도 샤워를 하고는
새끼 고양이를 조심히 들고는 어제 새벽의 그자리로 조심스레 데리고 갔다.
행여나 몸도 잘 가누지 못하는 새끼 고양이 한테 무슨 해가 있진 않을까
멀찍이 떨어져 한동안 지켜 보다
내 방에서는 한번도 내지 않았던 구슬픈 울음을 내지르는 새끼 고양이를
어미 고양이가 얼마 되지 않아 찾아와 입으로 가볍게 물고는
내가 모르는 어떤 아지트로 훅 데리고 가버렸다.
오전 부터 집 앞에서 으르렁 거리던 - 아마 새끼 고양이를 돌려 달라는 어미의 울부짖음 이었겠지 -
어미 고양이는 나를 보며 또 한번 으르렁 거렸을 수도 있었겠지마는,
입에 문 새끼 고양이 운반이 더 시급했는지 나에게는 별다른 위협도, 눈길 조차도 남기지 않고
정말 휙 사라져갔다.
그 순간,
일요일 화창한 대낮에,
동네 길거리 한복판에서,
나는 갑자기 어제보다,
더 서러운 슬픔에 눈이 흐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