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logue Of Monochr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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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의 고속버스

가뜩이나 일이 많아 오늘도 과연 오늘 퇴근할 지, 까딱 12시를 넘겨 내일 퇴근할 지 모르는 그런 상황에 갑자기 호출 명령을 받고 창원에 다음 날 아침 일찍 도착해야 할 일이 생겼다.

 

11시쯤 일을 끝나고 퇴근 하려다가 이대로 잠들면 새벽같이 일어나서 창원에 도착하는 것이 무리일 것 같아 심야 우등을 타고 마산까지 가서 창원으로 넘어가기로 계획을 세우고 집에 잠간 들려 씻고 옷만 갈아입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밤 1시 마산행 막차에 올라타자 마자 피곤에 지친 나는 4시간이 넘는 긴 여정의 시간을 바로 잠으로 메꾸기 위해 최대한 편한 잠자리를 만들 준비를 했다.

목이 말라서 깼을 때를 대비해 좋아하는 캔커피 두 개를 텅빈 옆자리에 뉘여 놓고 조용한 음악으로 MP3 플레이어의 플레이리스트를 채웠다.

 

하지만 결국 제대로 잠들 수는 없었다.

 

양을 세는 기분으로 조명이 꺼진 버스 안에서 커다란 창문 밖으로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다가왔다 사라지는 가로등을 멍하니 바라다 보았지만 몸은 피곤해도 어찌된 일인지 정신은 점점 또렷해져 갔다.

 

서울에서 마산까지 그 긴 고속도로에는 도대체 몇개의 가로등이 있는 걸까?

그 긴 거리에 일정한 간격으로 서서 다가오다가 어느 순간 뒤로 휙 사라지고,
사라진 가로등의 불빛이 희미해져가기 전에 또 다른 가로등이 어느 샌가 접근하는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 누구도, 또는 어느 누구에게도 가로등 더 높은 하늘 위에 떠 있는 저 달처럼 늘 같은 자리에 있어 본 적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세상 속 인간 관계란 게 모두가 피곤한 몸을 억지로 뒤척이는 심야 고속버스에서 바라 보는 창밖 어두운 도로에 일정 간격으로 다가 왔다가 내 옆이라고 생각하는 찰나 이미 떠나가기 시작하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 속에 빠져 있는 내가 가여웠다.

 

자장가용 음악으로 선곡한 조용한 기타 연주곡은 그 한 대의 악기만이 노래하는 슬픈 선율로 나의 울적한 마음에 공명했고 캔커피는 잠을 더 걷어내 가고 있었다. 그렇게 몇시간을 우두커니 창가에 기댄 채 끊임없이 다가왔다가 사라지는 가로등만 바라 보았다.

 

외로움이란 거, 도대체 뭘까.

 

물음표가 아닌 마침표로 문장을 끝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이상한 질문.

(2009.05.12 02:11)


나비들이 보여 주는 꿈

정상과 비정상의 선은 모호하지. 아주 사소한 계기로 바뀌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나?

금방 알 수 있을거야. 미쳐있는 건 분명 이 세계야.

 

이 세계는 나비들이 내게 보여주는 꿈인가?

그렇지 않으면 지금 있는 세계가 현실이고 내가 있던 세계가 꿈이었나?

나는 알 수 없어...

 

나는 여기서 나가고 싶어했지. 이 세계에서 나가는 문을 계속 찾고있었다.
지금 알았어. 문 같은건 어디에도 없었지.

예전에 알아차렸을거야. 너는... 눈을 뜨는게 무서웠던 거겠지.



내가 살았던 시간중에 너와 있었던 때만 현실같은 느낌이 들어.

 

- 카우보이비밥 - 천국의 문(2009.05.30 01:12 )


증발...

책상 위 빈컵에는 먹다 남긴 커피가 그 수면을 나이테처럼 세긴 채 바짝 말라 가고 있었고

분리 수거 봉투 안의 바짝마른 콜라 PET 안에서는 그 안의 당분을 섭취하기 위한 날파리가 꼬여 있었다.

 

어딘가로 증발했을 각종 액체들.

 

변기 안의 더러운 물이건, 슈피겔라우 잔에 담긴 그랑크뤼 와인이었던 간에

모든 액체는 증발하고,

단지 자신의 형체를 지켜 주었던 그 틀에서 흔적만을 남긴 채 광할한 대기로 흩뿌려졌다.

 

변기 청소를 하면서,

주말에 마셨던 와인 잔을 설겆이 하면서,

가끔 그런 다양한 틀 그 속에 담겼던 여러가지 액체를 생각해 본다.

 

눈에 보이지 않게 서서히 증발해 버린, 그런.

 

뭐 기분 전환 겸 대청소를 하고 설겆이를 하고

그리고 가사 후 기분 전환으로 다시 새 잔에 내가 좋아하는 술을 따르듯이

인생은 늘 새로운 액체를, 어쩌면 새로운 틀안에 계속 붓고, 비우는 일인 것 같지만,

 

차마 내가 비우지 못하고,

미련에 의해 남겨두면 화석 같은 흔적만 남아

세상을 등진 채 그것에 몰두하는 사막을 횡단하는 남루한 고고학자의 기분이 들어,

 

늘 마르지 않는 오아시스를 꿈꾸는가 보다.

 

그 오아시스가 설령 신기루 일지 몰라도.

(2009.06.16 02:10 )


Little Cat


우루과이와의 16강전 월드컵이 패배로 끝난 날,
딱 대한민국 16강전 까지의 대회 숫자 만큼 만난 그녀와 나는 그날

8강 진출의 꿈을 안고 대한민국을 응원하러
어색하지만, 기대되는 마음으로 만났다.

 

저녁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그날,
결국 대한민국은 아쉽게도 우루과이에게 8강 진출의 티켓을 내주었고,
그날 대한민국의 2010 남아공 월드컵이 끝난 것처럼 나의 짧은 소개팅 역사도 끝났다.

 

잡히지 않는 택시를 뒤로하고 가까운 곳에서 술을 마시자던 그녀는 결국
술김에인지, 아니면 정말 그 동안 말하지 못했던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눈물을 글썽이며,
정말 미안해요, 라는 말을 술주정 처럼 반복했다.

 

솔직히,
그런 미안하다는 말을 해 준 것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 고마웠다.
누구나에게 흔히 있는 일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대해졌던 나에게는,
그것도 너무나 고마웠던, 예컨데 잊을 수 없는 슬프지만 고마웠던 진심이었다.

 

늦은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에야 자리를 떠
그녀의 집앞까지 바래다 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왠 통통한 고양이 한마리가 평소와 다르게 나를 보며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고양이 왕국이 여기 아니면 어디냐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고양이가 판치는 동네였고 그만큼 고양이가 사람 보기를 서울역 앞 비둘기 보는 만큼
시큰둥한 그런 동네에서
그 고양이는 좁은 골목길에서 나를 가로막고 이빨을 세우며 으르렁 거렸다.

 

축구도 지고, 맘에 쏙 들었던 여자한테도 까이고,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하찮은 고양이는 나를 보며 으르렁 거리고,

 

갑자기 술김에 성질이 난 나는 들고 있던 우산을 골프채 휘두르듯 크게 휘둘러 그 고양이를 위협했다.

 

그런데,
나의 위협적인 모습을 피해 달아난 그 통통한 어미 고양이 뒤에는
이제 막 태어난 거의 새끼쥐 만한 크기의 막 태어난 새끼 고양이가 빗속 진흙탕 속에 있었다.
눈도 뜨지 못한채 간신히 앞발을 움직이며 몸을 빙글빙글 돌리는 비에 젖은 새끼 고양이가.

 

무의식 중에 나는 어미 고양이가 도망간 그자리의 새끼 고양이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깨끗한 수건 하나를 꺼내, 내 침대 옆 바닥에 깔아 놓고
조심히 새끼 고양이를 눕히고는 수건을 반으로 접어 이불을 만들어 주었다.
자그마한 그릇을 하나 꺼내 냉장고 속 우유를 부어 주었고,
더운 초여름 밤에 보일러를 켰다.

 

그리고 술이 오른 나는 침대에서 푹 쓰러져 버렸다.

 

늦은 휴일 오후에 일어나서야
새끼 고양이를 다시 살펴 볼 수 있었고,
그렇게 따라 주었던 우유가 전혀 비워지지 않은 걸 알 수 있었다.

 

갓 태어 났지만 유난히 꼬리가 길어 영락없이 새끼 쥐와 다를 바 없는
눈 꼭 감은 새끼 고양이를 두 손으로 조심히 들어 쓰다 듬고 나서는
손에 묻은 흙탕물을 보고
따뜻한 물을 틀어 씻겨 주면서, 나는 생각했다.

 

내 욕심으로,
- 마음에 두었던 여자한테 채이고, 그런 나를 보며 으르렁 거리던 뚱뚱한 고양이가 얄밉고,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의 어미 고양이 품속 보다 내 방 안이 훨씬 좋은 환경일거라고 믿던 욕심으로
새끼 고양이를 빼앗아 온 것이구나. 라고.

 

그리고는 곧장 나도 샤워를 하고는
새끼 고양이를 조심히 들고는 어제 새벽의 그자리로 조심스레 데리고 갔다.
행여나 몸도 잘 가누지 못하는 새끼 고양이 한테 무슨 해가 있진 않을까
멀찍이 떨어져 한동안 지켜 보다

 

내 방에서는 한번도 내지 않았던 구슬픈 울음을 내지르는 새끼 고양이를
어미 고양이가 얼마 되지 않아 찾아와 입으로 가볍게 물고는
내가 모르는 어떤 아지트로 훅 데리고 가버렸다.

 

오전 부터 집 앞에서 으르렁 거리던 - 아마 새끼 고양이를 돌려 달라는 어미의 울부짖음 이었겠지 -
어미 고양이는 나를 보며 또 한번 으르렁 거렸을 수도 있었겠지마는,
입에 문 새끼 고양이 운반이 더 시급했는지 나에게는 별다른 위협도, 눈길 조차도 남기지 않고
정말 휙 사라져갔다.

 

그 순간,
일요일 화창한 대낮에,
동네 길거리 한복판에서,
나는 갑자기 어제보다,
더 서러운 슬픔에 눈이 흐려졌다.


흐리고 비가 올 것 같은 날이였어.

바람이 불어서 그래도 시원하다고 생각했는데,

왠 걸.

무거운 가방을 메고 얼마 걷지 않았더니 땀이 흠뻑.

적당히 기분 좋고 적당히 더운 그런 기분이라,

할 일도 없이 이것 저것 기웃거리며 거리를 무작정 돌아다녔네.

 

채도 낮은 복잡한 거리 풍경을 힐끗힐끗 지나쳐 가면서

그래도 또렷하게 눈에 각인되는 장면들은 기억 속에

이야기 거리가 아직 남아 있는 장소들.

 

어떤 이미지는 단지 아 그때쯤 그런 일이 있었지 하는 무뎌저간 기억과, 또 어떤 이미지는 사소한 대화 한마디가 주위 소음과 함께 또렷히 재생되는 확실한 기억.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이제 더이상 누구와 함께 했던 어떤 기억이라는 것은 남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와 동시에 그때쯤 내 기억 속엔 나만이 머릿 속에 또렷이 남아있겠구나 하는 깨달음 비슷한 생각.

 

꽤 흐뭇할 것 같아.

나만으로 꽉찬 추억이라는 건.


2007.07.02.

한동안 나름 즐겁다고 생각되었던 일상이 정말 얇은 유리창처럼 한 순간에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슬프고, 분통이 터졌지만,
현실은 나의 얇은 유리창이 아닌 튼실한 방탄유리 같았다.

물론, 나의 모든 창이 산산 조각 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두렵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떤 일로 한 순간에 세상을 향한 내 모든 창이
영화 속 설탕으로 만든 모조 유리 마냥 흔적도 없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질까 하는...

유리조각 흥건한 바닥을 바라보는 내 자신의 모습이 현실의 어느 날이 되었을 때,
과연 난 무엇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게 될까?

한동안 잊고 살았던 나의 꿈을 찾는 인생을...
오늘부터 기도해 본다.

헛된 꿈은 이젠 안녕...


이런 기분 일지는 몰랐다.

프로포즈를 하고,
그 끝이 코미디 영화처럼 너무나 허무하게 끝날 때의 기분이,
이런 기분 일지는 몰랐다.

나의 처지를 내 스스로 남들이 보기에 지나치리 만큼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결혼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나와는 상관 없는,
나에겐 저기 소말리아의 기아 문제 같은, 그런 딴 세상 얘기인 줄 알았는데,

무슨 해피엔딩 영화처럼, 꿈꾸는 순정만화처럼,

정말 가진 것 하나 없어도 평생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오기하나만 가지고,
그 어떤 장애물도 상관 없이 그냥 앞만 보고 가고 싶은 그런 사람이었는데...

생애 최초의 프로포즈는,
그렇게 끝나버렸다.


잠정적 폐쇄...


아주 오래전 부터 생각했었는데,
이제 그때가 온 것 같습니다.

오늘 부로 이곳은 잠정적으로 잠수 작업에 들어갑니다.

그동안 찾아와 주신 여러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꾸벅...

애초에 반쯤 일기장의 성격을 띄고 끄적인 블로그 였는데
웹이라는 특성과는 정반대로 찾아오시는 분이 점점 익명의 누군가가 아닌,
저를 아는 사람들로 더 많이 채워지게 되었던지라,

어쩐지 껄끄럽기도 하고 부담스러워져서 점점 내용없는 곳이 되어버리는 느낌입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이렇게 큰소리 쳐서 가슴 속 스트레스를 확 날려 버리려고 했는데
이제는 반대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계속 빙빙 돌려대거나,
화가나고 분하고 슬픈 일도 아무렇지 않게 말해야 하는 등의 또 다른 스트레스를
불러오고 말았습니다.

물론 계속 일기를 쓰겠다는 마음은 여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마 다른 어디선가 지금과 비슷하게 쭉 이어가겠지마는
일단 이곳에서 이사가는 곳의 주소를 밝힐 수 없음을 널리 양해 바랍니다.
(뭐 사실, 한자리수의 방문객을 보면 이런 공지문도 좀 오버 같긴 하지만...^^;;;)

그동안 제가 쓴글을 전부 백업하는 작업을 마무리 하는대로
이 장소는 텅텅 비게 될테니,
어느날 갑자기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
아, 백업 작업이 다 끝났나 보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모두들 부디부디 행복하세요~

<388> 머나먼 갑자원


어쩐지 하루종일 TV에 인터넷 포털 사이트까지,
죄다 장애인에 관한 프로그램과 기사로 도배가 되어 이상하다 생각했더니
오늘이 바로 장애인의 날이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먹고 살기도 힘든 이 경쟁사회를 핑계로
장애인에 관해 어떤 소신이나 신념 따위 가지고 있지도 않은 내가
장애인의 날이라고 그것에 관련한 포스팅을 아무렇지 않게 올린다는 건
스스로도 웃기게 생각되기는 하지만,

장애인의 날이라고 하니까 얼핏 생각나는 만화가 하나 있어서
오늘은 그 만화 이야기를 소개 하고자 한다.

그 만화는 바로 '오사무 야마모토'의 '머나먼 갑자원'이다.

평소 야구 소재 만화를 좋아하는 취향 탓도 있었지만,
10권짜리 1질이 새 책임에도 불구하고 곧 절판 절차에 들어간다고
꽤 낮은 가격에 팔고 있길래 덜컥 집은 것이 바로 이 '머나먼 갑자원'이었다.

제목과 겉표지의 야구 유니폼을 입은 주인공의 그림을 봐서 당연히 야구만화 겠거니,
그렇게 생각하고 첫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야구는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단순한 소재였을 뿐,
이 만화의 진정한 소재는 바로 장애인에 관한 것이었다.

'후쿠사토'라는 농아 학교에서 창단된 야구부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시합 참가 제한 등의 시련을 겪으며
본선도 아닌 예선전 1승을 목표로 펼쳐나가는 이야기.

타자가 배트로 볼을 칠때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고생하는 점이라던가
원체 몸이 약해 야구를 하는데 따르는 고통 따위를 제껴 두고라도,
일상 생활 구석 구석의 모든 사건들이 너무나 가슴 아파서
1권부터 마지막 10권을 덮을 때까지 내내 울면서 책을 보았다.

실제 오키나와에 있었던 농아학교 야구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지어진 논픽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만화인데 이게 또 논픽션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슬펐었다.

차라리 조금 허구를 가미했다면 결국 꿈에 그리던 1승을 마지막으로
해피엔딩의 드라마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을,

정말 지독하게 사실적으로,
잔인한 현실에 대해 한치의 시선도 비껴나가지 않은 그대로
결국 예선 1승을 거두지 못하고 야구부는 3학년을 마치게 되고 만다.
왠지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이 연상된다.

더욱 잔인했던 것은
1승을 거의 이룰 수 있었던 게임에서 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들 야구를 하며 행복해 하고 하나의 관문을 지난 것처럼
독자들을 착각하게 만들어 놓고는,

마지막 반권 가량의 분량에서 이들이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
여전히 세상의 편견과 오해의 틀 속에서 무시받고 상처 받는 에필로그를
그냥 그대로 그리고 있는 점이라는 것이다.

이건 '슈퍼스타 감사용' 보다 더 잔인하다...ㅠㅠ
만약 영화의 마지막 10분 분량에서 감사용이 결국 얼마 후 1승을 거두었고...
따위의 자막 대신에 여전히 타자들에게 돌아가며 두들겨 맞고
패전 전문 처리 투수로 활동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페이드 아웃 되었다고 상상해 보라.
이 얼마나 잔인한가...

어설픈 해피엔딩 따위를 버리고 그토록 섬뜩하게 잔인했던 느낌의 본질이
장애인을 보는 이 사회의 삐뚤어진 시각과 그 사회 속의 바로 나라는 점이라는 걸,
작가는 잔인하고도 날카로운 단검으로 가슴 깊이 후벼 파주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튼 결론은 정말 책을 읽다가 잠시 덮어 두고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멈추었던 게
몇십 번이었던지 기억 나지도 않을 만큼 슬프고 슬펐던 만화라는 것이다.



나중에 그 서점을 가보니
같은 작가가 그린 총 7권짜리 '사랑의 집'이라는 만화도
두꺼운 끈에 묶여서 절판 전 땡처리로 싸게 팔고 있길래 얼른 사왔는데
그것도 역시 장애인에 관한 만화였다.
이 '오사무 야마모토'라는 작가는 만화가 라기 보다는
만화라는 매체를 활용해 장애인의 본질을 알려주는 사회운동가 같은 느낌이었다.

가끔 눈물을 흘리고 싶을 때면 책장에서 이 만화를 꺼내
아무 권이나 꺼내 중간에서 부터 읽기 시작하는데
책마다 절판된 책이라는 걸 표시하기 위해 오른쪽 하단에 일자의 펀칭자국이 나있는 책들을 보면
그렇게 독자들에게 인기 없어 외면받고 분쇄되어 버릴 책의 운명이
마치 소외받는 장애인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좀 묘해진다.

이건 사족이라기 보단, 내 속이 이렇게 골방같이 좁다오! 하는 자기 욕하기 같긴 하지만,
예전에 학교 후배한테 이 책을 추천한 적이 있었다.

내가 들려준 간략한 스토리를 듣고서 신파조에 질질 울기만 하는 어두운 내용은
만화책에 안맞는 다고 평을 했던 후배에게 확 기분이 상해
그 이후로 두번 다시 좋은 감정이 생기지 않았던 일도 얼핏 생각난다.


<387> 야시시한 꿈


꿈을 꿔 본 적이 언제였더라...?

평소에 거의 꿈을 꾸지 않는 편이다.
아니,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매일 밤 꿈을 꾸지만 아예 기억을 못하는 편이라고 해야 옳을라나?

최근 1년 동안은, 정말 기억 속에 꿈이란 게 없었다.

별 효용적 가치가 없는 돌맹이가 보석이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가치를 갖는 이유가
희소성 때문이라고 했던가...

그런 희소성 때문에 나는 일평생 꾸었던 꿈들을 거의 다 기억하고 있다.

그 중에 대학교 2학년 때 꾸었던 꿈 하나.

꿈에서 나는 내친구 옆에 찰싹 달라 붙은 헤어진 옛 여자친구와 마주치게 된다.
그것도 무슨 일 때문에 내려간 지방의 호텔 복도에서.

빨간 카펫트가 복도에 쭉 깔려 있고 두꺼운 대리석 기둥마다 은은한 조명이 달려있던
꽤 고급 호텔 같은 그런 느낌의 복도였다.

이렇게 우연히 맞닿뜨린 다음 부터 꽤 많은 중간 이야기가 있지만
모두다 과감히 생략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지막 날 밤,
그녀는 한밤중에 약속대로 내 방에 들어왔고,
꿈속에서 나는 한동안 그녀에게 몰입했다.

결국 그렇고 그런 *^.^* 야시시한 꿈.

그때까지만 해도 여자와 그런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 막 꿈에서 깨고 나서는 꽤 충격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조금 뒤 정신을 차리고는 슬며시 이불을 들춰 속옷 상태(-_-;;;)를 확인했었던 기억도 나고.
시간이 좀 지나자 첫경험이 꿈속이라니, 왠지 억울하고 분한 기분도 조금 들었고,
그리고 그 후 내내 지금까지는,
그 꿈에 대한 느낌은 슬프고 외로웠다는 기분이였다.

이성이나 머리로는 도저히 잠재울 수 없는 미련이란 놈과의 싸움도 힘겨웠는데
이제는 아예 내 통제영역 저 밖의 잠재의식 영역 속 꿈이란 놈까지 덤비다니,
왠지 대책없이 마냥 아파해야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파릇파릇한 어린 나이엔
세월이라는 놈이 그런 것 이상으로 더 강한 녀석이란 걸 몰랐었고,
결국 그 추상적인 서바이벌의 게임에서 마지막 승자가 된 것은 세월의 힘이였다.

그 꿈이나, 그 꿈 속에서 나누었던 사랑이나,
말 그대로 일장춘몽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꿈속에서 그것(!)은 정말이지 진짜 같고 생생했다.
한참 뒤에 매트릭스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가상공간에서 권력을 준다는 미끼에 주인공들을 배신했던 그 놈의 기분도 조금은 이해가 갔다.
그렇게 완벽하게 진짜 세상 같은 가상공간 속이라면,
그것도 사실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도 했었고.

그러니까, 결론은 뭐냐 하면,
요즘은 더 외롭고 쓸쓸한데,
어째서 그런 꿈 하나 안꿔지나 하는 것이다...-_-;;;
그렇게 리얼하고 생생한 그런 꿈이라면 흔쾌히 꿔줄 용의가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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